희망이
보인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TV도 없던 어린 시절에 라디오 연속극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든지 어린 가슴을 아리게까지 하였었다.
인간은
기다림의 존재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를 기다린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기를,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되기를,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기를 기다린다. 요즘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보통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대학가에서는 四學年을 死學年으로 표기한다. 그것은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곧 실직을 의미한다는 자조 담긴 그들만의 은어(隱語)이다. 이런 절망
앞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미래는 여전히 희망으로 남아있다.
만일
인간에게 기다림이 없다면 현재를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인간이 미래를 모르도록 한
것은 인간에 대한 神의 특별한 배려이다. 만일 자신의 모든 미래를 안다면 어떻게될까?
그렇고 그런 자신의 운명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열심을 낼 것인가? 그런데
실직할 것도, 부도날것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모르기에 너도나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아닌가?
미래는
미지의 세계이고 누구에게나 감춰져있다. 그러기에 미래는 희망과 꿈의 시간이다.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기다림의 본능을 잠재우지는 못하리라!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드라마의 묘미는 역전과 반전에 있고 예측을 불허할 때 흥미는 고조된다.
내 인생에 잠시 겨울이 왔다해서 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밤은 아침을 위해 준비되었고,
삭막한 겨울은 찬란한 봄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교훈 삼아 우리 모두
희망을 갖자. 미래의 내 인생에 멋진 역전의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새
천년을 맞이하여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진리의 고수라는 미명하에
개혁을 거부한 체 두꺼운 각질 속에 숨어 있는 듯 했다. 이런 차제에 본 교단은 제88차
총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하였다. 이번 총회는 한국교회의 앞날에 긍정적 방향인 몇 개의
청신호가 켜졌다.
첫째,
기구개혁이 완결되었다. 우리 교단의 신학 방향은 신정통주의를 표방한다. 보수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개혁을 지향한다. 그 신학적 방향에 걸맞게 우리 교단은 보수와 진보를 포용한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 교단이 결정하는 정책은 타 교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이번 총회에서는
오랫동안 연구 검토되어 왔던 정책총회 사업노회라는 큰 틀의 총회기구개혁이 완결되었다.
따라서 개혁적 방향으로의 급물살을 탈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조직과 제도의 변화
없이 지속적인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지방 분권화 추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 교단의 조직도 그런 쪽으로 변해야 하며 장로교의
원리인 노회중심의 정책변화는 방향을 바르게 잡았다고 보여진다.
둘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김태범 목사의 부총회장 당선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미 총회 총대들의 상당수가 세대 교체되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3명이 출마하여
1차 투표에서 두 후보의 표를 합친 것보다 많은 과반수 이상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는
것은 개혁 세력의 압승을 의미한다. 분명 한국교회와 총대들은 개혁을 선택했다. 두 후보와의
정책과 방향의 차별성이 참신성과 변화로 인식되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부대에」라는 정신에 따라 완결된 기구개혁의 틀에 새로운 변화의 주역이 선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셋째,
상황이 무르익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라는 표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실 때를 찾고계셨다. 로마제국의 잘 정비된 법, 도로, 언어의 통일, 영적갈망
등이 고조 되어있었던 때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 결과 단시일 내에 복음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해 버렸다. 우리 교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장로교의 장자교단이다.
타 교단의 교단장들이 인사차 와서 본 교단을 앞서가는 총회로 평가해 주었다. 인사치레인지는
모르지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라고도 했다. 우리 교단은 신학적으로 건전할 뿐 아니라
일할 수 있는 풍부한 인적, 물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그러기에 우리 교단은 희망이
보이고 타교단도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기에 한 국교회는 희망이 보인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두 천년을 걸쳐 사는 의미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변화되는 총회를 바라보면서
우리 노회도 사업노회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고도, 가치관도 바뀌어야 하고,
제도도 개혁해야한다. 그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고 진행되어 갈 것이다. 누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