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是日也放聲大哭
인간은
본성과 위선의 딜레마에서 고민하면서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위선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기는
어렵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고등동물인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평화가 유지되는 시기는 풍요의 시기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포만감이 느껴질 때에는 동물의 왕 사자도 어린 영양과 어울릴 수 있다. 그러나
빈곤의 시대에는 약한 것들은 여지없이 강한 자의 먹이가 된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역사학자 중에는 역사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19세기말은
제국주의가 활기를 치던 시대였다. 힘있는 강대국들에 의해서 세계의 질서는 재편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변명은 강자들의 포효 속에 아스라히 묻혀 버린다.
빗장을 안으로만 걸고 있었던 우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세계적
정황이 그때와 너무 흡사한 것이다. 그 때와는 달리 빗장을 거의 없애버린 것이 다를
뿐! 그때는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켰다면 지금은 좀 더 세련되게, 그러나 총칼보다 더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경제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진 것이라고는 없다.
1905년(광무9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는 장지연선생의 「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필봉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신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설마 하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 임금삭감이니
동결이니 실직이니 할 때에도 설마 나에게까지야 하던 소박한 갑남을녀들에게 IMF는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다가와서는 저항을 용납치 않은 체 우리 모두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고
있다. 인내에 한계를 견디지 못한 가정들이 파괴 내지는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다. IMF의 관리체제는 총칼 없이 지배되는 신 식민지의 다름 아니다. 백년 전에는 그래도
지식인들이 나라 잃은 서러움을 필봉으로라도 분출했으나 오늘날의 지식인과 언론들은
그런 외마디 한번 지르지 못한 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 슬프다. 이 백성이 어찌다
이렇게 되었는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