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5일 주일낮예배 설교 : 정무용 목사
작성일 : 2021-12-05
조회수 :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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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태복음 1:18-25(신1면) 제목 : 의인 요셉 설교 : 정무용 목사
누구나 행복을 꿈꿉니다.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처럼 누구의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이것도 우리는 행복을 꿈꾸기 위해서입니다. 그중에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중요한 시기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이루며,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은 이를 통해서 행복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셉도 행복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평균적으로 결혼하는 남성의 나이는 17세 전후로 보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을 하기 위해 신부의 집에 결혼을 약속하고는 1년여의 유예기간, 즉 결혼을 위해 여러 준비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에게는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배신에 대한 분노를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7살 전후의 남자가 이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살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 분노에 자신에 몸을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뉴스나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하여 배신을 경험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듣곤 합니다. 자신의 분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잘못된 행동을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행복을 짓밟아버린 상대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당시에 율법에 따르면 당연한 권리입니다. 이에 해당되는 법은 사형이고, 지금의 중동지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살리는 것보다는 죽이거나 잘못된 쪽을 선택한 사람들에 관한 말씀들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에서 가인은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온전한 예배를 드린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죽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에서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버린 동생 야곱에 분노하여 죽이러 쫓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살리는 방향보다는 죽이거나 복수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경우를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택한 분노는 우리에게 복수의 기쁨보다는 후회를 더 많이 합니다. 본문에서 요셉을 의인이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분노를 참을 줄 알았고, 복수보다는 어떻게 하면 마리아를 살릴 것인가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에 위치한 '안데스의 예수님상'이라고 불리는 청동상은 양국의 국경 분쟁이 평화롭게 타결된 것을 기념하여 1904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지형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지다 보니 동상이 자연스레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칠레 사람들 사이에서 “왜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 저들에게만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라는 거야?”하며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이때 어느 신문사 편집국장이 사설을 썼는데, 다행히 그 글로 인해 이 소동이 잠재워졌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상이 칠레에 등을 돌린 이유를 이렇게 풀이 했습니다. “예수님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아직 더 많이 돌봐줘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쓴 글 하나로 인하여 분노가 사라지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분노의 감정은 앞에 있는 상황만 보기 때문에 그것이 오해인지 아니면 정말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게 합니다. 17살 전후, 중3 정도 되는 남자가 분노를 이겨내고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은 살리는 것을 우선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마리아와의 관계 속에서 파혼을 선언하면 일단 마리아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구설에 오를 수는 있어도 도덕적 책임과 당시의 관습 속에서 죽음의 위험으로부터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약속했을 때, 파혼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비난받습니다. 요셉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각오하면서 마리아를 살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끊고자’했고, 그의 선함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요셉이 의인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인정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노아입니다. 창 6:9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인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마 7:21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합 2:4에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인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롬 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실수와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돌이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완성된 의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어가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을 ‘의인’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0절에 요셉이 주의 사자와 꿈에서 만납니다. 거기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지가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음성은 그의 마음속에 분노의 감정을 한순간에 정리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적어도 마리아가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있다 할지라도,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하나님의 사자가 왔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감정이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에 그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하여 마리아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모습, 그리고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이후로 철저히 마리아의 보호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책임감 있게 그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아내와 아들을 지키는데 자기 삶을 다했습니다. 헤롯왕의 위험으로부터 피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고, 헤롯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를 이을 때가 돼서야 그는 자기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평생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곁에 있어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30세 때의 모습을 보면 이미 요셉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랑하는 아내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 살았던 요셉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선택하신 귀한 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중심으로 다른 사람이 맞춰주기를 바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마리아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으로 자신의 인생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야 이 사명은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구전원교회 성도여러분,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요셉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둠 속에 자신을 맡기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모습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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